[우산안까먹기] 노동자, 쓰러지다
올해 첫 책먹사 모임, 회색하면 떠오르는 책을 몇 권 정도 읽기로 했다. 첫번째로 책을 골라준 건 김재님! 회색이라고 했을 때 공장의 회색 연기의 이미지가 떠올라 공장 노동자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니 이 책을 찾았다고 한다.
시민도서관... 교통편이 너무 불편하다.
복학하면 학교 도서관 왕창 써야겠다.
안전을 담보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정을 취재한 르포이다. 르포라는 장르답게 신문기사처럼 쓰인 면도 있으면서 문학처럼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면도 있었다. 그 덕에, 수많은 노동자(제조·건설·조선업 노동자, 운송업 특수고용직 노동자, 감정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 사고들을 겪어왔으며 그것들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사고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사고 이후의 허술한 조치, 산재 신청의 어려움, 책임을 예방(회피!)하기 위한 부당한 고용구조 같은 문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그런 사건이 있겠지...', '안타깝지만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하고 대충 공감하고 있었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나의 이러한 감수성 부족은 타인의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단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윤식이 나간다."
조선업 하청 노동자 중 하나였던 (가명) 윤식 씨는 배를 만들다가 목숨을 잃었다. 교육을 받고 하청에서 몇년 일하면 원청 소속 직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아픈 몸을 모른채하며 일하던 윤식 씨 같은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었다. 동료 노동자들은 담배에 불을 붙여 선수식에 나서는 배에 올려둔다. 그 배를 만들다 죽은 동료를 기리기 위해.
위험의 외주화
이 책에서 다루는 하청 노동자들은 주로 제조업, 건설업, 조선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산업들은 원청에 딸린 하청, 하청에 딸린 또 다른 하청이 너무 많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루어져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청에서 멀어질수록 안전사고도 많이 발생하고,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가 제도적으로 불분명해진다 (물론 말장난에 가까운 책임 회피에 불과하지만ㅎ).
하청은 원청에서 일을 따내기 위해 비용 경쟁을 하게 된다. 원청은 더 빨리 일을 마칠 수 있는,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일을 마칠 수 있는 하청에게 일을 맡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 하청은 노동자를 위해 마땅히 쓰여야할 안전사고 예방 비용과 사고 처리 비용들을 절감하는 쪽으로 타협하여 낮은 가격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일을 따낸다. 원청은 원래 자기네 노동자에게 일을 시켰다면 그런 비용들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청에 일을 주면 안전 관련 비용을 절약하면서 생산을 할 수 있게 되고, 사고 발생 전후의 책임도 하청에 지울 수 있게 되어 리스크도 회피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 '위험의 외주화'는 이런 야비한 현상을 꼬집는 말이다.
특수고용직
원청-하청 구조 이외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업계가 있다면 바로 운송업이 그러하다. 택배, 퀵서비스, 배달일을 하는 기사님들은 '특수고용직'이라는 형태로 계약이 되어있다. 저자는 이를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고용방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특수고용직이 하는 일은 일반적인 운송업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개인사업자처럼 취급되어서 일을 하면서 생기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줄 회사가 없다는 것이 다르다. 단적인 예시가 쿠팡 배달 기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 전공수업에서 동기가 쿠팡을 예로 들어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냐는 질문은 결국, 누구를 혼내야 (무엇을 고쳐야)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질문이다.
저자는 기업들이 안전 관리에 지나치게 돈을 아낀다고 비난한다. 주장이 쎈만큼 마음 한 켠이 불편하다는 몇몇 책먹사 멤버들의 의견이 있었다. '기업 잘못도 있지만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국가에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지금껏 문제를 방관했던 정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반면, 주장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취재원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대신 화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라고 인정받는 우리나라가 안전관리에 돈을 들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산재 예방에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p.57)
- 기업에서 마케팅에 쏟는 비용과 안전 관리에 들이는 비용을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전자가 더 많다. (p.84)
두번째 대목만 보면 기업이 잘못하고 있는 것 같고, 첫번째 대목을 보면 기업도 문제겠지만 정부 차원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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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르겠고 — 내 생각부터 말하자면 둘 다 못됐다. 아니, 셋 다 못됐다.
- 기업 : 아무리 이윤추구가 목적이라도 사람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사고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은 그 사실이 알려졌을 때 기업이 얻을 이미지 손해와 그럼에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해봤을 때 후자가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생명과 이익을 저울질한다는 것부터 잘못되었다.
- 정부 : 기업은 아기, 또는 동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 욕구에 충실하게 움직이므로 적절한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 동물을 마냥 풀어놓았던 것 같다. 최소한 강력한 제도라도 마련해서 기업이 안전 관리에 소홀히 했을 때 얻을 손해(법적인 처벌)가 크다면 기업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화물연대와 같은 노동자의 목소리에 좀 더 귀기울이고 기업에게 양보하라고 강제했다면 더 많은 노동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 국민 : 사회 문제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하다. 어찌나 감수성이 부족한지, 어지간히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과 떨어진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공감하기 힘들어한다.
느낀점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내가 사는 세상과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내 자신이 창피했다. 이 책을 읽고 변한 게 있다면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다른 사람의 아픔을, 심지어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 세상인지 알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이해를 깊고 넓게 확장해준 책이었다.
한줄평
PedagogueL : "노동자, 니가 쓰러뜨렸다"
씀민 : 사람을 말려죽이고 찢어죽이는 대한민국
김재님 : 서로의 투쟁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기를
우산안까먹기 : 이런 세계도 우리 세계다